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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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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기준을 낮춰야 하는 이유” 남인숙 ‘어른수업’ 저자

안녕하세요. 책을 쓰는 작가 남인숙입니다.
최근에는 남인숙 ‘어른수업’이라는 관계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하세요?
나는 결혼식 가서 축하해 줬는데 내 결혼식 안 오고 축의금도 안 보낸 친구.
손절해요.
자, 같이 먹고 1/n 하는데 항상 자기가 계산하면서 슬쩍 돈을 덜 내는 친구.
손절해요.
그럼 이 경우는 어떠세요?
나만 만나면 자기 힘든 일이 털어놓으면서 내가 얘기를 하면 하나도 안 들어주고 말 돌리는 에너지 뱀퍼이어같은 친구.
손절하죠?

자,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 관계를 전부 다 전리하면 어떨까요?
절말 편합니다.
예, 근데 대신에 내 옆에서 아무도 남지 않겠죠.
이건 편하고 독립적인 삶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그리고 고립은 우리 인생에 해롭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모형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 다 이기적이고 귀찮다. 그냥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다’
이런 주장과 색각들인데요, 아,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많은 오해가 나오고 있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많은 분들이 독립적인 거하고 고립 되는 걸 혼동하세요.
사람이 독립적인 거 중요합니다.

제가 25년간 책을 쓰고 또 독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때달하는 게 사람이 행복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하는구나, 이거였어요.
부족합 없이 풍족하게 살면서 또 의존적인 사람들은 은은하게 불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순간에 혼자일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여로분께 다시 한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꼭 ‘이 사람은 진정한 친구야’ 이렇게 정의되는 사람만 친구 범위에 넣어야 할까요?
아, 조금 바꿔 말하면 깊은 관계의 친구만 친구일까요?

여러분 드라마 좋아하시죠?
드라마로 보면 주인공한테는 꼭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쭉 인연을 이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주인공하고 모든 일상을 다 공유해서 서로 모르는 게 없습니다.
감성적인 속 이야기도 다 털어나요.
그 뿐만 아니라 뭐, 이상한 행동을 해도 다 이해해 줍니다.
술 마시고 주사 부리는 것도 욕하면서도 다 받아줘요.

드라마에서 이런 친구가 항상 나오는 이유는요, 간단합니다.
그게 구조를 만드는데 절친한 친구라는 설정이 괸장히 쓸모있기 때문이거든요.
“어, 나는 속으로는 저 사람을 사랑하는데 상처 받을까봐 자꾸 밀쳐내는 것 같아”
이렇게 주인공이 자기 마음을 혼자 주절주절 말하면 이상하잖아요.
그걸 대사로 받아줄 상대역이 있어야죠.
그리고 주인공에 대해서 전부 다 아는 인물이 하나쯤은 있어야 사건을 전개할 때 편하죠.
그래야 누가 비밀을 흘리거나 주인공 위한다고 무리하다가 또 사건이 터지죠?

설정상 필요해서 만드는 건데 우리는 착각을 하죠.
저런 친구 하나 있는 건 기본이구나.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재벌 3세 미남미녀면서 천재 얘기까지한 주인공보다 이 주인공 친구가 더 비현실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외계인이나 도깨비만큼은 비현실적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 속 친구관계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완벽함은 현실이 없다는 걸 우리가 다 알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곁다리로 나오는 친구관계는 별 의식없이 그려러니하고 받아드립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친구의 조건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민담에서 친구의 대한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부자집 아들이 돈을 쓰면서 막 친구들 많이 만들고 다녔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나한테 친절한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시험해 보자” 이렇게 제안을 했어요.
그리고는 돼지 한마리를 잡아서 시체처럼 자루에 넣고 친구들을 찾아 다닙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나 좀 숨겨 줄래?”
아들 친구들은 전부 기겁하면서 아들은 돌려 보냈어요.
근데 아버지가 찾아간 단 하나의 친구는 상황을 보자마자 시체를 지고 온 그 아버지를 집 안에 들여줍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구라고 만나는 사람들은 다 소용없구나. 친절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돤다’
이런 몇까기 교훈을 패키지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요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요, 살인한 친구의 범죄를 은닉하고 시체까지 같이 묻어줘야만 진정한 친구시험이 합격한다?
아니, 친구 허들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전 못 해요.

제가 만난 수많은 독자들이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고 관계를 잡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공동점은 하나더러고요.
진정한 친구에 대한 수준이 너무 높다는 거예요.

여러분, 친구가 뭘까요?
대답 잘 안 나오실 거예요.
쉽지 않는 문제입니다.
내가 시체를 지고 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숨겨 줄 사람일까요?
저는 같이 시간을 보니고 싶은 사람. 이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시간은 정말 소중한 거 잖아요.
내가 인생을 이루고 있는 한 조각을 잘라서 함께 쓰고 싶은 사람.
이런 감정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관계에거 욕심을 부리게 돼요.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는 자꾸만 토털 패키지로 요구해요.

자, 여기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저하고 가장 친한 친구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러면 이 친구랑 여행도 같이 다녀야 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이 친구하고 봐야 하고, 맛집도 이 친구하고 같이 가야 하고, 속상한 이야기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정말로 당연한 일인가요?

만약 여러분이 성인이시고 이런 친구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관계에 참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친구가 여러분을 참아 주고 있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이 여러 면에서 그렇게 서로 잘 맞는게 불가능하거든요.

청소년기에는 이게 가능합니다.
자아가 덜 잘라있고 취향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발달 단계상 친구가 목숨만큼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기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공유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도 어른이 되어서도 너무 밀착해서 모든 면에서 함께 하는 관계는 분명히 둘 중 한명, 아니면 서로가 참아주고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아야 하는 관계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친구로서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왜냐면 그 사람은 좀 아까 말씀드린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 이런 사람이 더이상 아니게 되거든요.
관계의 밀착 정도로 포기하지 못 하고 깊은 관계에만 욕심내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관계 사냥꾼이 됩니다.
관계를 사냥하는 것처럼 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자기 생활 집중하면서 잘 하다가 그 인생길에서 마주친 사람하고 잘 지내게 되는 게 보통 친구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근데 이런 분들은 조건이 맞는 사람을 콕 찍어놓고 타겟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하고 소울메이트가 되기 위해서 막 노력을 합니다.
사냥할 때 추적하는 과정하고 비슷해요.
자신한테는 노력과 배려지만 상대방한테는 부담이 될 수 있죠.
그렇게 해서 관계가 틀어지면 상대방을 원망하고나 반대로 뭔가 관계에 서튼 나 자신을 원망하고나 하기 쉽습니다.

관계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 A는 일주일에 한번이상 만나는 친구 딱 1면 있습니다.
B는 1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 10명이 있습니다.
누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하고 있는 가능성이 높을까요?
B! 오, 많은 분들이 말씀해 줬어요.
과거의 저는요, A처럼 관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 모든 걸 공유할 친구 한명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 친구 달라고 막 기도도 했어요.
근데 지금은 B유형으로 살면서 훨씬 만족스러운 관계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좁은 관계에서 예민해지게 되고 있어요.
하나의 관계에만 의지하게 되면 내가 딱히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어도 그 안에서 자꾸만 섭섭한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막 애써서 이해해 보려고 해도 잘 안 돼요.
깊은 관계 건 얕은 관계 건 여러 갈래의 관계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면 훨씬 묻어난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사이에 좀 섭섭하겠다” 이렇게 말할 법한 일도 아무 생각없이 넘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관계가 딱 하나면 그거 하나만 신경쓰면 되니까 더 안전하고 편한 거 같죠?
근데 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유일한 관계라는 건 그 만큼 그걸 잃을 때 타격이 크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그런 잃지 않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감정의 무게, 이게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요즘 MBTI로 성격이 분류하는 일이 많으니까 뭐 ‘나는 I 라서 여러 관계 싫어! 못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향적이고 에너지가 적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수렴형 사고를 하는 내향들이 좋은 관계에서 오는 예민함에 더 치명적일 수도 있어요.
과장 이상적인 건 얕은 관계를 여러 갈래 자지면서 동시에 깊은 관계도 한 두개쯤 있는 T 자형 관계예요.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면 얕은 관계만으로도 괜찮습니다.
깊은 관계의 친구가 안 만들어진다고 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굉장한 내향이구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책작가가 된 것도 사실 이 이유가 컸어요.
그래서 한동안 사람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하면서 사람들과 부딪히지도 않고 혼자 있으니까 편했어요.
그리고 누워있는게 너무 좋더라고요.

좌식생활, 예, 온라인에서 혹시 이런 종류미션 돌아다니는 거 보신 적이 있나요?
1년동안 방 안에서 외출 안하고 1억 받기.
연봉 2억인데 무인도에서 혼자 등대지기로 근무하기.
당신은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이 비슷한 게 지금도 끊임없이 많은 변형되서 돌아다니죠?
이런 걸 보면 진짜 누가 1억원 주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돼죠?
저는 이런 걸 보면 무조건 YES! 하고 대답했던 사람이었어요.

한번은 택배 와있다고 문자를 받고 현관 쪽으로 나가는데 거기 평범하게 그냥 놓여있는 제 신발을 보는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어, 왜 이렇게 낯설지?
생각해 보니까 몇주간 그 신발 신은 기억이 없는 거였어요.
그 정도로 움직이지 않고 지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덜커 병에 걸리고 맙니다.
병명도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여기저기 이유없이 아팠어요.
자율신경도 이상을 일으켜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걸 치료하려고 애를 쓰다가 드디어 원인을 알게 됐어요.
그게 뭐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제가 너무 안 움직이고 안 걸어서 다니는 거였어요.
저는 책상에서 일하고 너머지 시간에는 주로 누워서 책 보고 하는 게 너무 좋았는데 그 시간들이 저한테는 해로워던 거죠.
억지로도 밖에 나가고 걷기운동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저는 관계가 정신적인 걷기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분들이 걷기운동은 운동도 아니라고 하죠.
일상적인 걷기운동한다고 뭐 특별이 건강해지거나 근육이 생기지 않거든요.
근데 안 하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상적인 움직임이 계속 돼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활동도 유지되고 하는 거죠.

관계도 비슷합니다.
신경 쓰이고 귀찮다고 해서 단절하면요, 관계를 통해 해소될 감정들이 몇배를 덩치를 키워서 나쁘게 되 들어오게 됩니다.
“지금보다 약간만 더 내 갱계를 벗어나면서 넓히자, 조금은 얕아도 상과없다”
이렇게 관계의 장벽을 낯추고 타인과 함계하는 시간 자체를 그렇게 즐기시면요,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플 때 아무 인연없는 낯선 사람이 이렇게 손만 잡아 줘도 통증 수치가 내려간다고 합니다.
혼자서 카페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그냥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는 외로움을 덜 느끼지고 사회성 회로가 작동된다고 해요.
관계를 경계하는 마음, 깊은 관계가 아니면 걷어내는 경계심이 타인을 필요하는 우리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울타리를 낯추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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